안녕하세요? 40대 퇴사자입니다.
평일 새벽에 축구를 하면 직장인들은 애가 탑니다. 축구를 보자니 다음날 직장 생활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안 보고 자려니 뭔가 찜찜하고 그렇죠. 하지만 저 같은 백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보고 자야지. 마침 와이프도 연차를 쓰고 있어서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른 육퇴, 9시부터 대기했다
와이프가 연차를 쓰고 있어서 이날은 아침부터 놀이공원에 다녀오느라 피곤했거든요. 당연히 아이만큼이나 많이 뛰어다닌 저희 부부도 피곤했습니다. 저녁 먹을 기운도 없었거든요. 아이는 밥을 해서 든든하게 저녁을 먹이고 일찍 재우러 들어갔더니 9시도 안돼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전에 사 놓은 곱창 등 술안주 거리를 꺼내 요리를 했고, 소주 한병도 꺼내 들었죠. 주말에 다 보지 못했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마무리하고, 넷플릭스에서 핫하다는 '선산'까지 2편 보고 났더니 새벽 1시가 됐습니다. 채널을 돌렸더니 막 시작을 하더군요.
그런데 웬걸 와이프 눈에는 졸음이 가득했습니다. 축구는 초반부터 재미가 없었습니다. 패스도 부정확했고, 조직력이 없다는 것이 저희같은 축알못이 봐도 느껴질 정도였거든요.
이 정도면 새벽까지 봐도 재미가 없을 거다. 지고 나면 더 찜찜하게 잠들 수 있다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와이프는 자러 들어갔습니다.
매일매일이 토요일과 일요일인 저는 안 잔 김에 끝까지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전반전은 거의 안 봤고요. 후반전 절반 이후부터 봤습니다. 그동안은 블로그 쓰고 있었거든요.
와이프도 깨워서 다시 본 한국축구
블로그를 쓰다가 다시 나와서 후반전 중반 이후를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웬걸 이미 한 골이 먹힌 상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몰아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든 한골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진영에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선수들이 악착같이 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설영우가 넘겨준 패스를 문전에서 조규성이 머리로 받아 동점골을 터트렸죠. 앞서 조규성이 아시안컵 출전 전에 나 혼자 산다에 나왔다가 크게 욕을 먹었다고 들었습니다. 앞서 예선에 졸전을 벌이면서 한국 축구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컸는데, 조규성에게 타깃이 돌아간 것이겠죠. 그랬던 그가 만회를 해냈습니다. 후반 추가시간 10분 중 9분을 넘긴 시점에서 말이죠.
연장전에 돌입하기 전에 와이프를 깨웠습니다. 이때가 벌써 새벽 3시가량 됐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축구 상황을 설명했더니 나오더군요. 연장전에서도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습니다. 사우디 골문 앞에서 지속적으로 기회를 만들었지만 골이 터지지는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 골키퍼 조현우의 손에 상대방 골이 잡히면서 한국이 AFC(아시안컵)에서 8강에 진출하게 됐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결국 포기하지 않으면 됩니다. 초반에 조직력이 무너진 우리 축구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도 지겠구나 싶었지만, 우리 축구는 경기를 하면서 재정비 했습니다. 오히려 한 골이 먹힌 위기 상황에서 조직력이 살아나고, 선수들은 더 전투적으로 뛰더군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처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결국은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백수지만, 제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살려고요. (갑작스런 자기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