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퇴사하고 보니 달라진 것들
대책 없이 퇴사한 지 딱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3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났는데, 그 사이 벌써 내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조차 기억도 나지 않네요. 마치 2년 군대를 다녀오고도, 제대 후 3일이 되니 내가 전역을 한 것인지, 군대를 안 다녀온 것인지 헷갈렸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문득 퇴사를 하고 지난 며칠을 돌이켜 보니 생활 속에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1.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
퇴사를 하고 나니 잠을 편하게 자게 됐습니다. 업무 특성상 다음 날 쓸 글의 주제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게 여건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어디 가서 무슨 내용을 알아볼 것인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업계에서 주요 소식은 무엇인지를 보고하는 것입니다. 발제인데요. 다음날 쓸 거리가 마땅치 않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네요.
밤에 잠을 편하게 자다보니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몸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회복한 것이 느껴집니다. 개운하게 일어난 것이죠. 특히 얼굴을 보면 효과가 확연히 나타납니다. 피부에 윤기가 살아나고, 눈밑에 다크서클과 피부 꺼짐이 사라졌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그동안 살이 쪘을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며칠 사이에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2. 퇴사를 하니 주변이 보인다
퇴사 하고 가장 달라진 것이 '시각'입니다. 시각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월 아침, 어린이집에 아이를 느긋하게 등원을 시키는 것이 제 일과가 됐습니다. 9시까지 등원인데, 9시 반이 돼도 아이와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가거든요.
이제 4살된 아이는 몇백 미터밖에 안 되는 어린이집을 가는 길이 신기한가 보더라고요. 자동차를 좋아하는 시기인지라 아파트 안쪽으로 청소차가 들어오면 그렇게 신기해하고 좋아했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얼른 가자고 재촉했겠지만 이번에는 청소차, 택배차, 트레일러를 실컷 구경하고 다녔습니다. 어린이집은 당연히 지각을 했고요.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으로 향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 어린이집 가면 친구들이랑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야겠어" 본인이 다양한 종류의 차를 본 이야기를 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어린이집에 들어서자마자 맞아주시는 선생님께 자신이 아침에 본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내더라고요. 그거 보는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지금까지 "얼른 가자"소리만 해댔을까요? 사소한 것조차 아이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는 저에 대한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라는 고민도 앞섰지만 잠시 잊기로 했고요. 그냥 집 주변을 좀 걸어봤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10분 중 처음 5분은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걸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빨리 걷지? 전혀 빨리 걸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행하듯 느긋하게 걸으면 될 일이었어요. 하지만 바쁘게 살아온 일상을 기억하듯 몸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과거시험에 합격한 '선비' 마냥 팔자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어봤습니다. 마침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나뭇가지에 맞은 빗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뭇잎들이 비에 맞아 고갯짓을 하는 것도 보였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일찍 색이 바래진 나뭇잎이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은 새삼스러웠어요.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웠는데, 저는 그동안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 보고 살았네요. 이렇게나마 세상을 느낄 수 있게 된 시간에 감사했습니다. 이게 불과 아침에 아이와 어린이집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들입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이 길어야 10분은 될까요? 앞으로도 주변에 더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